《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 이후의 단상 - 기후 변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나쁘지 않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Factfulness》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 에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온실가스 배출 요인이 각각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현실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 나아가 ‘Zero Carbon’으로 가기 위한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 측면에서 현재 대안으로 채택되고 있는 기술들부터 미래에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포텐셜이 있는 기술들까지 다룬다는 점이다. 실제 상용화 되지 않은 부분에서도 어떤 문제점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는 환경 메시지로 인해 생겨난 편견에 대해서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우린 보통 플라스틱 = 환경 파괴라는 등식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기존에 강철로 만들어진 범퍼나, 연료탱크, 내장재 등이 플라스틱으로 많이 대체됐는데 재밌게도 연비가 향상되면서 화석 연료를 덜 사용하게 되고,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통 ‘Avoided Emissions(회피된 배출량)’이라 하는데 ‘원래 더 많이 발생했을 탄소 배출을 다른 선택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빌 게이츠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단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라는 것과 나아가서는 실리콘밸리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돈을 끌어모았고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빌 게이츠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빌 게이츠는 내가 태어난 연도인 1995년에 40살의 나이로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부터 자선사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했던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면 어떤 특정 사건이 트리거로 작용했다기보단 가족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봉사 정신과 사회 기여에 대한 영향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문제들이 지구촌의 스케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벌어들였던 부와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빌 게이츠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도대체 뭘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의 책임감일까, 아니면 문제 해결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일까?
나는 지난 달 비즈니스 차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여행 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키워드는 비전이다. 나는 공감 능력이 높지 않은 사람이다. 정치나 종교,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가 말하는 비전은 늘 추상적이라고 생각했었고,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직할 때도 회사의 비전보다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지, 사내에 좋은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는 지를 우선으로 고려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끝없는 실패에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믿는 어떤 가치, 즉 비전이나 미션, 신념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 비전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큰 비전과 함께 기술로 심각한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빌 게이츠를 크게 지지한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 라도 한 것처럼 그동안 무서운 속도로 축적했던 막대한 부를 전부 재단에 투자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빌 게이츠처럼 개인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현재 빌 게이츠가 집을 수 있는 옵션과 우리가 집을 수 있는 옵션에는 큰 장벽이 존재한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 교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우리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고민하는 것은, 기후 변화에 더 크고 장기적인 기여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방법으로는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리바운드 효과로 인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초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로 인해 일반적으로 100회 이상 사용해야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어간다고 한다. 나는 평일 기준 2잔의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데 최소 3달은 꾸준히 사용해야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이다. 셰일 혁명에 힘을 입었던 미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전기차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일정량의 그린 프리미엄이 발생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타면 마이너스 그린 프리미엄을 지불하게 된다. 즉, 친환경적인 대안을 선택하면서도 실제로 지출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6%는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제로 카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이동수단에서 탈탄소화가 필요하다. (물론 청정전기 문제 역시 해결되어야 한다)
《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에서는 위의 두가지 외에도 유권자의 신분을 활용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지방 의원에 출마하는 것,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를 보여주는 것, 집 안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의 역량과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빌 게이츠랑 비교한다면 우린 훨씬 적은 역량과 자원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비록 내가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임팩트가 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갖기 보단 그 임팩트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는 노력을 찾아보고 실천하는게 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